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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안에 남선교회가 결성된 것은 1920년초 ‘청년면려회’로부터 시작한다. 즉 남선교회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청년 면려회’로 불리다가 1963년 8월 대구제일교회에서 열린 장년 면려회 전국 연합회 총회에서 그 명칭을 ‘평신도회’로 개칭하였다. 그 후 1977년 제62회 교단 총회에서 ‘남전도회’로 변경되었고, 다시 1979년 9월 총회에서 ‘남선교회’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새문안 남선교회는 총회 차원의 면려회가 결성되기 이전인 1921년 4월 남녀 전도회 31명으로 조직된 후 1923년 학생 면려회와 청년 면려회로 분리되어 활동하다가 1938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자 고웅진, 정충희, 백춘학, 김병권, 민종식 등 청년 집사들을 중심으로 새문안 청년 면려회가 재 결성되었다. 1957년 새문안 면려회는 청장년 면려회와 고등 면려회, 중등 면려회, 소년단으로 분리 발전되었으며, 이후 총회 결의에 따라 청장년 면려회는 평신도회, 남전도회 그리고 다시 평신도회로 명칭은 바뀌었으나 그 활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활발해져 갔고, 1950-1960년대 전도 활동과 농촌 계몽 및 의료 봉사 활동을 여전도회와 함께 역동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1973년 부터는 선교 담당 부목사 제도가 생겨 나면서 평신도회의 선교, 봉사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리고 그 해부터 각 부의 선교활동을 선교부에서 관장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선교를 꾀할 수 있었다. 아울러 수시로 선교요원을 뽑아 강의와 실습을 통한 훈련을 시킴으로써 선교인력을 충당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생 선교대회를 비롯해 교육자 선교대회를 개최해 교회내의 전도, 선교 인력을 배출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 새문안 선교회는 새문안 선교부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미자립교회와 서울 근교의 고아원, 교도소, 그리고 군부대와 소외된 도시 빈민지역에 대한 선교활동을 펼쳤고, 특히 여전도회와 함께 무려 81교회를 지원 하였다.
한편, 1980년대에 접어들며 교인수의 급증에 따라 남선교회 조직이 년령별로 세분화되었다. 1983년 새문안 남선교회는 제1남 선교회(50세이상), 제2남 선교회(40-49세), 제3남 선교회(30-39세)로 분리, 확대하여 다양한 선교 봉사 활동을 하였다. 1995년 새문안 남선교회는 다시 확대되어 4개의 선교회로 분리되어, 제1남 선교회(61-70세), 제2남 선교회(51-60세), 제3남 선교회(41-50세), 제4남 선교회(31-40세)로 독립되어 활동하다가, 늘어나는 회원으로 2007년부터는 7개 선교회로 나뉘어 1남 선교회는 66-70세, 2남 선교회는 61-65세, 3남 선교회는 56-60세, 4남 선교회는 51-55세, 5남 선교회는 46-50세, 6남 선교회는 41-45세, 7남 선교회는 30-40세로 분리하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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